학사의 책갈피
책 더미 속에 묻혀 사는 동안 학사는 생화를 볼 기회를 좀처럼 갖지 못했다.서재 속에서의 고독함을 달래주기 위해 학사를 흠모하던 소년은 외지의 생화를 가져온다.학사는 이 마음을 고이 간직하기 위해 생화를 바람에 말려 두꺼운 책에 끼워두었다.그 후부터 온통 회색으로 가득 찼던 학사의 서재들에 또 하나의 화려한 색채가 더해졌다.
학사의 렌즈
학술은 값비싼 대가가 따르는 도박으로 한 평생을 걸어도 소득을 보지 못하는 수가 있다.학사들은 끝없는 메모와 검색, 계산과 주해에서 반 평생을 보내고, 실패와 막힘으로 인해 다시 한 번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한때 뛰어났던 시력도 차차 빈번한 독서로 인해 점점 나빠졌지만 답을 찾는 길은 여전히 아득해 보인다.
학사의 먹잔
학사의 책상에 놓여진 우아한 찻잔은 얇은 도자기로 만들어진 잔으로 유금의 테두리를 지니고 있다.이 난잡한 서재와 어울리지 않는 찻잔을 보면 그녀의 가문이 결코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고한 학사는 이 찻잔의 아름다움과 용도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깃펜을 찻잔에 헹구고 있었다.그녀가 찻잔을 펜을 씻는 물건으로 생각하여 그런지 찻잔이 먹물로 인해 흉하게 물들어도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학사의 깃펜
학사의 깃펜은 타향의 새의 꽁지 깃털로 만들어졌다.글을 쓰는 걸 여태 멈추지 않아서인지 깃펜은 이미 장엄한 검은색으로 물들여졌다.수년이 지났지만 학자는 이 검게 물든 깃털 붓을 바꾼 적이 없다.전투를 오래 경험한 병사처럼 깃펜이 그녀에게 가장 알맞은 무기였기 때문이다.
학사의 탁상시계
예쁘고 아담한 탁상시계가 실수로 떨어지지 않게 안전한 위치에 정성스레 놓여 있다.서재에 종일 머리를 틀어박고 일 년 내내 바깥세상을 보지 않는 학사의 시간에 대한 감각은 장님이 물건을 보는 것과 같다.이 아담한 탁상시계는 항상 학술의 고행에서 방향을 잡아줬고 학사가 앞길을 계획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었다.어느 날 지혜가 서재의 문을 두드리는 순간이 온다면 학사가 그동안 보내왔던 오랜 시간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